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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詩] 혈거시대((穴居時代) - 이정록 혈거시대 이정록 어쩌다 집이 허물어지면 눈이 부신 듯 벌레들은 꿈틀 돌아눕는다 똥오줌은 어디에다 버릴까 집안 가득 꼴이 아닐 텐데 입구 쪽으로 꼭꼭 다져 넣으며 알맞게 방을 넓혀 간다 고추에는 고추벌레가 복숭아 여린 살 속에는 복숭아벌레가 처음부터 자기집이었으므로 대물림의 필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으며 집 한 채씩 갖고 산다 벌레들의 방은 참 아늑하다 2 PVC 파이프 대리점 옥상엔 수많은 관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자유로운 입으로 휘파람을 불고 동우리를 튼 새들 관악기를 분다 아귀에 걸린 지푸라기나 보온덮게 쪼가리가 빌딩 너머 먼 들녘을 향해 흔들린다 때론 도둑고양이가 올라와 피묻은 깃털만 남기고 가는 문명과 원시의 옥상으로 통이 큰 주인아줌마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또 .. 더보기
[詩] 콩나물 - 이정록 콩나물 이정록 작은 양손을 머리통 속에 디밀어 넣은 동승들 헛발 위에서의 저 숭엄한 합장 맨머리에 폭포수를 맞으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까닭은 밖으로 나아갈 싹에게 빠른 길을 내주기 위해서다 머리를 숙이는 일이 어찌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작은 손에 파란 핏줄이 돋을 때까지 외발로 서 있으리라 끝내는 지붕이며 주춧돌 다 날려버리고, 스스로 다비식의 젖은 장작이 될 저 빼곡한 법당들 이정록,『열린시학 2004년 봄호』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