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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詩

[詩]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中. 더보기
[詩] 향수 - 정지용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더보기
[詩] 묘비명 - 김광규 묘비명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中. 더보기
[詩] 10월 - 문인수 10월 문인수 호박 눌러앉았던, 따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문인수, 『동강의 높은 새』 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