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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사회ㆍ문화

[영화평론] 두 얼굴의 메타포, 김기덕



두 얼굴의 메타포, 김기덕
- 영화 <섬>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리얼리티(reality)' 영화가 그렇듯, 김기덕의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편함은 진화하여 우리에게 수치심을 준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작은 방죽이 있다. 그 방죽에 서서 한참동안 돌아서지 못한 적이 있다. 검푸른 물속에서 어머니의 얼굴, 첫사랑의 추억 같은 것들이 떠올라 갈대처럼 몸서리쳤고, 갑자기 몹쓸 분노와 숨어 있던 악다구니가 목께로 차 오르기도 했다. 김기덕의 영화 <섬>을 보고 난 후였다.

김기덕은 평론가나 대중들 사이에서 지지와 비판이라는 극단적인 주제가 되어왔다. 그는 목탁을 두드리는 수도승이고, 우유부단한 로맨티스트이며 반항적인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속에는 제도에 저항하는 모습과 잔인한 현실, 사랑의 아름다움이거나 성적인 욕구불만, 그리고 종교적 교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의 반항적인 모티프가 남들과 다른 점은, 영화 전반에 감수성어린 메타포(metaphor)와 종교적인 희망을 복선으로 깔아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괴기하고 테러리스트적인 그의 영화는 혹자에게 '치기어리고 광기어린 실험작'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를 천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분한 평을 뒤로하고 난 김기덕의 메타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김기덕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은유는 '물(모성)', 사랑, 죽음, 종교에 대한 심상이다. 기본적인 정서는 서정적인 것이지만 그 것을 표현하는 무대와 장치는 거칠고 난해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서는 애절함과 동시에 성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플롯들은 시(詩)적이다. 애매함 속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마치 <지킬 앤 하이드>의 두 얼굴처럼 나타난다. 김기덕의 모든 영화는 억지스러울 만큼 '정'과 '반'을 넘나든다. 영화 <섬>에서 보여준 '물'의 이미지가 바로 그렇다.

물에 대한 심상은 <악어>, <섬>,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활>과 같은 작품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김기덕이 말하는 물의 의미는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문학에서 말하는 물의 의미처럼 '탈현실의 공간', '모성의 공간', '죽음의 공간'을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물에 대한 심상은 무척 진부하고 상투적인 소재이다. 하지만 김기덕의 진가는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평범한 물의 메타포에 사회현실을 투영한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물의 이미지가 현재의 사회 모습과 동일시되어 큰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섬>을 비롯한 김기덕의 모든 영화에서 물과 사회가 만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사회의 두 얼굴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울고 웃는다. 더러 행복이 울기도 하고, 불행이 웃기도 한다.

김기덕의 영화는 사실 난해하고 불쾌하다. <섬>을 보고 난 뒤, 방죽에 선 내 기분도 그랬다. 사랑을 잃은 여자가 자신의 성기 안에 낚싯바늘을 넣고 잡아당기는 장면이나, 낚시꾼이 잡은 붕어의 살점을 회쳐 다방 여자에게 먹인 후 붕어를 다시 물에 놓아주는 장면, 그리고 저수지에 떠 잇는 좌대에서 나누는 정사, 좌대의 화장실로 드나드는 여자의 모습과 같은 리얼리티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 불쾌함은 불쾌함에 그치지 않는 것이 더 큰일이다. 불쾌함은 곧 분노를 거쳐, 참을 수 없는 연민으로 까지 치닫는다. 영화 <섬>을 보면 누구나 그 연민을 한동안 지우지 못 할 것이다. 필자는 그의 영화 한 편 한 편을 '상처'라고 말하고 싶다. 그 상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다. 아주 크고 흉하지만 가려져 있기 때문에 잘 알아 볼 수 없다.

<섬>을 보면서 내심 영화의 결말을 걱정했다. 영화는 죽음으로만 내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청자인 나도 불안증에 시달린 것이다. 끝은 의외로 간단했다. 앞선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의 큰 상징으로 맺고 있었다. 사건의 무대였던, 저수지 한 가운데의 좌대는 갈대숲으로 오버랩 되고, 갈대숲으로 벌거벗은 남자가 들어간다. 잇따라 갈대숲은 여자의 음모(陰毛)로 오버랩 된다. 물의 한가운데서 일어난 사건들이 물 속으로 잦아드는 결말. 김기덕의 영화는 대부분 극적화해로 끝이 난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몇 달 뒤 방죽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섬>을 떠올린다. 줄거리 따위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검고 고요한 물결 속에서 알 수 없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상징이었다. 물 안에 무언가 울고 웃는다. 두 얼굴의 메타포.


작성자 : 드라이플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