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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詩

[詩] 성선설 - 함민복 성선설 함민복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우울氏의 一日』中. 더보기
[詩] 안부1 - 황지우 안부1 황지우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마조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는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황지우,『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中. 더보기
[詩] 묵화 - 김종삼 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엊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김종삼 전집』中. 더보기
[詩] 3월 - 조은길 3월 조은길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꽁망울들 따뜻하다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증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주고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가슴이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 더보기
[詩] 콩나물 - 이정록 콩나물 이정록 작은 양손을 머리통 속에 디밀어 넣은 동승들 헛발 위에서의 저 숭엄한 합장 맨머리에 폭포수를 맞으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까닭은 밖으로 나아갈 싹에게 빠른 길을 내주기 위해서다 머리를 숙이는 일이 어찌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작은 손에 파란 핏줄이 돋을 때까지 외발로 서 있으리라 끝내는 지붕이며 주춧돌 다 날려버리고, 스스로 다비식의 젖은 장작이 될 저 빼곡한 법당들 이정록,『열린시학 2004년 봄호』中. 더보기
[詩]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가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 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 더보기
[詩]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외롭고 높고 쓸쓸한』中. 더보기
[詩] 갈대 - 신경림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갈대』中. 더보기
[詩] 가을 - 함민복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中. 더보기
[詩] 칸나 - 이문재 칸나 이문재 따뜻하게 헤어지는 일은 큰일이다 그리움이 적막함으로 옮겨 간다 여름은 숨가쁜데, 그래 그리워하지 말자, 다만 한두 번쯤 미워할 힘만 남겨두자 저 고요하지만 강렬한 반란 덥지만 검은 땅 속 뿌리에 대한 가장 붉은 배반, 칸나 가볍게 헤어지는 일은 큰일이다 미워할 힘으로 남겨둔 그날 너의 얼굴빛이 심상찮다 내 혀, 나의 손가락들 언제 나를 거역할 것인지 내 이 몸 구석구석 붉어 간다 이문재,『산책시편』中. 더보기